Culture

진시황릉이 발견된 날, 3월 29일

1974년 3월 29일, 중국 서안 외곽에 있는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청년들이 우물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던 중 도기 조각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이 도기의 모양은 사람을 본뜬 모습이었고, 그 외에도 쇠뇌와 청동 화살 등을 함께 캐냈으나 물을 파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한 구석에 몰아두었다.

 

그러다 수도시설 담당자인 팡수민이 우물 작업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가 도기 인형이 눈에 띄었다. 평소 고고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살펴본 도기 인형이 진나라 시대의 것임을 알아보고 박물관에 연락하여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발견된 것이 진시황릉으로, 해당 지역에서 유독 농사를 짓기 힘들던 연유는 사마천의 기록에 따라 '수은의 강과 바다'를 만든 흔적으로, 수은이 땅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수은 함유량이 다른 땅에 비해 7배 이상 높았기 때문임이 밝혀졌다.

 

중국의 영어 이름인 차이나(China)의 유래가 진시황제가 다스린 나라의 국호 '진'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고, 중국을 하나로 통일한 나라이자 만리장성을 쌓은 나라라는 유명세에 비해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된 사례는 적다. 진시황릉에는 당시 유물이 온전히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출토될 유물을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중국은 위대한 진시황제의 무덤인 만큼 발굴 기술이 완벽해질 때까지 무리하게 발굴하지 않고, 되도록 온전하게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방침을 갖고 있는데, 이는 상기한 수은으로 인한 위험성과 조성 당시 함정을 설치해 두었다는 기록이 걸림돌이 되어 발굴을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머지않은 미래에 진시황릉 발굴이 이루어진다면 중국의 역사에 얽힌 미스터리가 대거 해결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